■ ‘파워볼’ 추첨 시간은 단 2분
미 플로리다 탤러해시에 있는 복권센터를 찾았습니다. 주 복권사업본부가 자리 잡은 곳입니다. 왜 하필 플로리다냐고요? 바로 이곳이 '파워볼' 추첨이 시행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. 북미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, 제일 널리 알려진 복권은 두 종류입니다. 하나가 파워볼(POWERBALL)이고, 또 다른 하나는 메가밀리언(MEGAMILLION)입니다. 둘 다 전국 단위로 판매됩니다. 주 단위로 발행되는 다른 복권들에 비해 시장규모, 당첨금 등이 비교가 안 됩니다.
파워볼 추첨은 탤러해시 복권사업본부 지하에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실시됩니다. 추첨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밤 10시 59분(미 동부시간 기준), 일주일에 두 차례입니다. 미 전역에 생중계됩니다-참고로 메가밀리언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매주 화·금요일 밤 11시에 추첨합니다- 추첨은 2분이면 끝납니다.
추첨이 실시되는 스튜디오는 추첨장비 등에 대한 엄격한 보안이 눈에 띄더군요. 복권 관계자들이 추첨에 쓰이는 플라스틱 볼(공)을 하나하나 장갑낀 손으로 정성스레 다루는 게 이채로웠습니다. 볼에 미세한 불순물이라도 달라붙게 되면 추첨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. 외부인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됩니다. 추첨 부정행위나 방송사고에 대비해 스튜디오 주변엔 수십 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. CCTV 화면은 미 전역의 각 지역 복권사업본부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됩니다.
제가 파워볼 추첨 스튜디오를 찾은 날은 15억 달러짜리 초대형 잭팟이 나오고 1주일 뒤였습니다. 당시 파워볼 1등 당첨금은 7천5백만 달러였습니다. 현지 관계자는 두 번 연속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.-파워볼은 1등 당첨자가 나오고 나면 그다음 회차부터 새로 시작합니다. 1등 당첨금은 4천만 달러, 약 5백억 원이 새로 설정됩니다-겨우 두 번 이월됐는데 누적액이 금세 천억 원에 가까워졌다는 얘기입니다.
■ 1등 금액이 커지면 매출은 더 는다
흥미로운 사실은 잭팟 금액이 대략 1억 달러(천2백억 원)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누적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. 1등 예상 당첨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복권 구매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진다고 보면 됩니다. 예를 들어 4천만 달러에서 새로 시작해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경우 6천만 달러/8천만 달러/1억 달러로 잭팟 예상 금액이 증가한다고 가정해보죠. 이 경우 1억 달러 이후에도 2, 3천만 달러씩 누적액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. 1억 5천 달러 /2억 2천 달러/3억 달러....이런 식으로 급속도로 불어난다는 것입니다.
▲ 2등 이상 당첨자들의 기자회견장
제일 관심을 끈 건 역시 1등 당첨자들에 대한 사연이었습니다. 탤러해시 복권사업본부 정문에 들어서면 우측에 응접실 비슷하게 생긴 방이 있습니다. 고액 당첨자를 위한 공간입니다. 파워볼이나 메가밀리언 2등 이상에 당첨된,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입니다.-1등 잭팟은 액수가 가변적이니까 제외하고, 파워볼과 메가밀리언 두 복권의 2등 당첨금만 해도 백만 달러, 우리 돈 12억 원입니다-대박 난 당첨자들을 위한 특설 공간에는 복권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과 인터뷰실도 마련돼 있습니다. 플로리다주에서 거액복권에 맞은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가야 합니다.
미국 전체에서 세 명이 나온 최근 15억 달러짜리 파워볼 당첨자 가운데 한 명은 플로리다 주에서 나왔습니다. 하지만 제가 복권사업본부를 취재할 때까지 이 당첨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. 현지 관계자는 "아마 지금 변호사와 당첨금 수령 이후 계획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. 지금처럼 세상의 관심이 집중된 시점을 피해 조용해졌다 싶으면 그때 찾아올 것 같다. 지금 등장하면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."라고 하더군요.
■ 1등 당첨자 신원을 공개하는 이유
"당첨자가 지금 나타나면 감당하기 힘들다"...바로 이 점이 미국 복권에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. 당첨자 신원공개와 관련된 부분입니다. 미국에서는 당첨사실을 비밀로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. 고액당첨자는 신원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.-예외적으로 신원 비공개가 허용되는 주는 오하이오,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다섯 개 주에 불과합니다-따라서 이름, 거주 지역은 기본이고, 경우에 따라 얼굴도 공개해야 합니다. 언론 인터뷰까지 해야 합니다. 시쳇말로 '잠수타고 싶어도' 안 됩니다. 이 부분이 당첨자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.
참고로 미국에서 복권사업 관계자는 복권 당첨자격이 금지됩니다. 당첨자격이 없는 복권사업 관계자가 아닌, 일반 복권구매자 가운데 당첨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당첨자 신원공개가 꼭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.
복권사업본부 측은 신원공개에는 상업적 목적도 있다고 귀띔해줬습니다. 당첨자 신원을 공개하면 복권판매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. 국내에서도 로또 복권당첨 비화 등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복권판매가 증가한다고 합니다. 비슷한 맥락이겠네요.